주보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Saint Francis of Assisi, 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10월 4일, 우리 사부 세라핌적 성 프란치스코,부제, 세 수도회의 창설자, 대축일
1881년 이태리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회개함으로 가난을 포옹하고 복음적 생활을 영위하면서 만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했다. 뜻을 같이 하는 형제들이 모여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1회)가 시작되었다. 클라라 관상 수녀회(2회)와 재속프란치스코회(3회)를 세우고 이교인들 가운데 복음을 전했다.
성인이 시작한 수도생활은 신앙적 기초 위에서 세상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교회에 가져왔다.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관상하던 중, 주님의 거룩한 오상을 받아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그리스도처럼 되었다.
1226년 10월 3일 아시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인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관상하던 중 주님의 거룩한 오상을 받아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그리스도처럼 되었다. 1226년 10월 3일 아시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인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유해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에 있다.
가난하시고 겸손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성 프란치스코 영성의 정점(頂點)은 성인이 가졌던 하느님께의 사랑이다. 성인의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지만 결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사랑이 아니라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하신 말씀대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그것도 영광과 엄위에 싸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 예수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성체 속에 계시면서 드러내신 당신의 인간적 사랑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모친이신 성모님께 대한 깊은 사랑이 되어 흐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세류동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중세에 살았던 한 성인의 교훈과 모범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리에게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물질주의로 인해 점점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져가는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자신까지 버렸던 프란치스코의 가난이 해법이 될 것이며, 사람은 물론 물, 땅, 나무, 새 등 피조물까지 사랑한 성인의 보편적 형제애가 기후변화 등으로 나타나는 지구의 재난에 대처하는 방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